星友會 3월 정기 모임은
남평문씨본리세거지 [南平文氏本里世居地]에서 가졌다.
18세기 초부터 남평문씨 일족이 들어와 터를 잡고 집성촌(集姓村)을 이루었던 곳이다. 1715년에 문재철(文在徹)이 이곳에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하며, 문익점의 18대손인 문경호가 터를 닦았다고도 한다.
이곳은 원래 절이 있던 명당터라 한다. 그 터에 남평문씨 일족이 들어온 후 정전법(井田法)에 따라 구획을 정리하고 터전과 도로를 반듯하게 열어 집을 짓고 세거하였다. 지금은 조선시대 말에 지은 아홉 채의 전통 한옥과 정자 두 채 등 총 11호 54동의 건물이 있다. 주거지의 도로에 면한 부분에는 나지막한 담을 쌓았으며,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도로망도 편리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곳의 주목할 만한 건물로는 수봉정사(壽峰精舍)와 광거당(廣居堂)·인수문고 (仁壽文庫) 등이 있다. 특히 수봉정사는 대표적인 건물로 세거터 전면에 위치하고 있다. 찾아오는 손님을 맞기도 하고 일족의 모임도 열던 큰 건물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한다. 광거당은 1873년 후은공(後隱公)과 문성공(文成公)이 중국 서적 수천권을 수집하여 세웠다고 한다. 이후 문중의 자제들을 위한 공간으로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양장소로 쓰였다.
문중서고인 인수문고는 위의 서적과 규장각 도서를 포함하여 1만 여 권의 도서와 문중의 보물을 보존하던 건물이다. 처음에는 소규모이던 인수문고의 서고를 후에 크게 지었고, 그 이웃에 도서의 열람을 위한 도서열람실도 따로 꾸며 놓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평문씨본리세거지 [南平文氏本里世居地] (두산백과)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3호. 11동. 11,701㎡. 약 300년 전에 남평문씨인 문재철(文在徹, 監正公)이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성당동 부근에 입향(入鄕), 정착하였다.
그리고 그의 5대손 문달규(文達奎)가 이곳으로 분가(分家), 정주(定住)하였다. 이곳은 남평문씨가 누대에 세거(世居)해온 전형적인 동성촌락(同姓村落)이다.
이 마을은 조선 말기의 양반가옥 9동과 별당(別堂)양식의 정자 2동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물들은 건축연대가 200년 미만이나 전통적인 영남지방 양반가옥의 정미(精微)한 고졸미(古拙美)를 갖추고 있다.
특히 계획된 도로망과 격조 높은 흙담이 건물을 에워싸면서 주위의 산야(山野)와도 잘 조화되고 있으며, 당내친(堂內親)인 대소가(大小家)가 큰집의 앞과 좌우에 새집을 지어 분가한 건물 배치는 매우 이채롭다.
본래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으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975년 12월 30일 대구광역시 지방지정문화재 민속자료로 변경되어 다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평문씨본리세거지 [南平文氏本里世居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점심은 미나리와 삼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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