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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따라 물따라/국내여행

46년만의 영남루

by *청담* 2017. 1. 29.

고향친구 두사람의 내외, 그리고 우리 내외 6명이

바람을 쏘이러 나간 곳이 가창의 우리밀 손칼국수집

돼지고기 수육과 밀주, 국수로 점심을 해결하고

청도를 거처 밀양 영남루를 찾았다.

나는 46년전 교육대학 1학년때 야유회를 갔던 기억이 새록세록....

돌아오는 길에 표충비각을 둘러보고

고령에서 저녁을 먹고 대구로 돌아왔다.

 

 嶺南樓

▲ 현재의 영남루

▼ 46년전 친구와 함께 영남루에서

경남 밀양시 중앙로 324 (내일동)

* 영남루는 예로부터 진주의 촉석루(晋州矗石樓), 평양의 부벽루(平壤浮碧樓)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의 하나로 보물 제147호다.

* 1931년 전국16경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 영남루(嶺南樓)는 밀양강변 절벽위에 위치하여 경관이 수려하여 1931년 전국16경의 하나로 선정되었고 조선후기(朝鮮後期)의 대표적인 목조 건축물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 신라시대 영남사(嶺南寺)라는 사찰이 있던 자리에 누각이 만들어진 것은 고려시대로 고려 공민왕 14(1365)에 김주(金湊)라는 군수가 이 절터에 영남루라는 이름의 새 누각을 지었던 것이다.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지금의 모습은 헌종 10(1844)에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고려시대 이후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들의 글과 글씨가 누각 내부에 가득하다.

▲ 현재의 密城大君 㞢檀

▼ 46년 전의 密城大君 㞢檀과 嶺南樓

▼ 46년전 1971년 가을에 영남루 기슭에서 내려다 본 밀양시 일부

▼ 영남루 아래 강가에서 점심을 먹고 놀이를 했던 우리 일행

 

 

 아랑사(아랑각)

 

 표충비각

 

밀양의 3대 신비 표충비각, 사명대사 비석에 흐르는 땀
표충비는 임진왜란 때 국난을 극복한 사명대사의 높은 뜻을 새긴 비석으로 1742년에 건립하였으며 나라의 큰 사건을 전후하여 비면에 땀방울이 맺혀서 사람들은 나라와 겨레를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 하여 신성시하고 있다.

 

  이 비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조직하여 왜군을 무찌르고, 전쟁이 끝난 후에 일본으로 건너가 왜군에게 끌려간 3천 명의 조선 포로를 귀환시키는데 큰 공헌을 세운 사명당 유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남붕선사에 의해 건립되었다.  _ 안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