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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따라 물따라/중국여행

중국여행 9(이화원 颐和园)

by *청담* 2010. 1. 20.

이화원(颐和园)

    청나라의 여름 궁전이자 중국을 대표하는 황가원림이다.

원나라와 명나라 때 물 저장고로 사용하면서 서호(西湖)라 불렀다.

청나라 최전성기를 이룩한 건륭제 눈에 들면서 황실원림인 청의원(淸漪园)을 조성한 것이 시초였다.

원명원이 완공되었을 때 건륭제는 더 이상 국고를 낭비하면서까지 원림을 조성하지 말라고 당부했으나 스스로 어겼다. 1750년 어머니 황태후의 60세 생신을 경축하는 의미에서 청의원을 건설하기 시작해서 1764년에 완공한 것이다.

    이화원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886년 서태후에 의해서다.

폐허가 된 원명원을 복구할 수 없다고 판단한 서태후가

해군 창설을 위해 마련된 예산중 은 2,400만 냥을 유용해 자신의 여름 궁전을 조성했다.

이곳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서태후는 자금성으로 돌아가기 싫어했다고 한다.

청일전쟁의 패배를 무력한 해군 탓으로 보는 중국 입장에서

서태후는 개인적인 탐욕 때문에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한 인물로 꼽힌다.

반면 건축학적인 관점에서 이화원은 ‘옛 중국인들이 건축에 품은 이상’을 여실이 보여 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옛 중국인 관념 속 지상 낙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화원을 통해 알 수 있다.

부지의 4분의 3을 차지한 곤명호(昆明湖)를 비롯해 황제가 정무를 처리하던 궁전 구역, 아름다운 누각,

우람하게 자란 고목, 관상용 태호석, 아치형 다리, 종교적인 건축물이 조화롭다.

중국에서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황실원림으로 ‘황실 정원 건축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여행자들은 주로 동쪽의 동궁문(东宫门)과 북쪽의 북궁문(北宫门)을 통해 이화원으로 들어간다.

어느 곳을 통해 입장해도 관계없다. 

 

우리한테도 악귀야 물렀거라.

이화원 인수전(仁寿殿)의 사물상

 

동궁문을 통해 들어오면 곧바로 궁전구가 나타난다.

이곳에 궁전구가 조성된 이유는 원명원과 거리가 가까워서 황제가 두 원림을 오가기 편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궁전구의 첫 번째 건물인 인수전은 황제가 조회를 열고 정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옥좌가 마련되어 있다.

한마디로 광서제를 수렴청정한 서태후가 정무를 보던 곳이다.

내부는 자금성의 황궁처럼 꾸몄지만,

대전 앞뜰에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심고 태호석으로 장식해서 원림 분위기를 살렸다.

대전 앞에 용과 봉황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화원(서태후가 거처하던 곳) 입구

궁전앞에서 악귀를 쫓는 사불상(네가지 동물의 모양), 그러나 궁전은 All 수리중. 

이화원의 인공호수. 멀리 보이는 전각(불향각)은 서태후의 60세 생신을 맞은 곳

불향각(佛香阁)

배운전 뒤로 만수산에 우뚝 솟아 있어, 이화원의 중심이자 나침판 역할을 한다.

1891년에 은화 78만 냥을 들여 지은 것으로, 이화원 내 최대 공사로 꼽힌다.

밑에서 보면 황금색 유리기와가 햇볕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게 아름답고, 산 위에 세워져 더 웅장해 보인다.

위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곤명호가 드넓게 펼쳐지고 원림 전체가 한 눈에 쏙 들어온다.

보운각(宝云阁)

서태후의 흔적이 역력한 이화원에서 건륭제의 체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어 특별하다.

불향각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둘러볼 수 있다. 1755년에 건립된 보운각은 동으로 만들었다.

높이 7.55m로, 총 207톤의 동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건륭제가 지은 대다수 건물은 1860년 영 · 프 연합군의 공격으로 불에 타 한줌재가 되었지만,

동으로 만들어진 보운각은 보존될 수 있었다.

곤명호(昆明湖)

항저우의 시 호를 닮은 이화원 최대의 호수이다 .

호수의 면적은 220만㎡로, 이화원 총면적인 290만㎡의 4분의 3을 차지한다.

이화원에 들어와서 곤명호를 처음 마주하면 바다처럼 거대한 모습에 입이 벌어진다.

호수의 둘레는 6.4km에 달한다.

곤명호는 원래 원나라와 명나라 때 물 저장고로 이용하던 시 호(西湖)를 건륭제가 확장 공사를 해 조성했다.

호수에서 나온 흙으로는 만수산을 더 높게 쌓았다.

호수를 3개 수면으로 나누고 인공섬도 3개 만들었으며, 긴 제방을 쌓았다.

항저우 시 호에 매료된 건륭제는 그곳에 있는 다리를 모방해서 6개의 다리를 제방과 연결시키고,

이름을 곤명호로 개명하였다.

여름에는 이화원 북쪽 구역을 모두 관람한 후,

석방에서 유람선을 타고 동남쪽 남호도(南湖岛)에서 내려 십칠공교와 동우를 감상하면 잠시지만 더위를 식힐 수 있다.

겨울이면 꽁꽁 언 곤명호에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시민들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