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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따라 물따라/하와이 여행

하와이 여행(진주만과 부대 내 Cafe & Grille)

by *청담* 2014. 9. 22.

하와이 여행 첫날, 새벽에 조서방 동생이 미국식 도시락을 배달해 왔다.

일찍이도 일어 났나보다 생각하면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오늘 일정을 위해 호텔로비에서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한잔했다. 

 

오늘은 13대의 전투기로 막강한 일본공군을 물리쳤다는 진주만을 끼고 있는

모 군부대(Hikam 공군기지) 내  Cafe & Grille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사위가 군의관이라 육해공군 부대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했고, 마음데로 드나들지 못하는 다른 여행객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Cafe & Grille 앞에는 정말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저 있었다.

이런 경치를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식사를 주문하고 준비되는 동안

사위동생 진기씨, 지현이, 정현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문한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휴식을 하는데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음식을 비둘기떼들이 말끔히 청소해 주었다.

비둘기들이 수십마리씩 몰려 다니며 음식물을 먹어 치우는 모습이 신기했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미국식이지만 모두 맛이 있어서 먹을만 했다.

밥도 있어서 한국에서 먹는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우리 일행이 먹은 음식 찌꺼기도 비둘기떼가 모여들어 먹어치우고 있다.

점심을 먹은 뒤 전원이 한 자리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진주만

위치 : 태평양 폴리네시아, 하와이 제도 오아후 섬, 호놀룰루 서쪽 10㎞ 지점

미국 해군기지와 태평양 함대 본부가 주둔하고 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공군이 이곳을 기습공격하여 미국 함대가 일시적인 타격을 입고

그 결과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진주만 공격). 호놀룰루 서쪽 10㎞ 지점,

오아후 섬의 남쪽 해안에 있는 진주만은 클로버 모양으로 인공개조한 항만이다.

이 항만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주위에는 에바·와이파후·펄시티·아이에아·호놀룰루 등의 도시가 있다.

가항(可航) 수역이 26㎢이고, 수백 개의 정박지가 있으며, 육지 면적은 4,000㏊가 넘는다.

와이피오 반도와 펄시티 반도, 그리고 포드 섬으로 인해 4개의 호수가 생겼다.

진주만 수로는 본래의 내륙 만을 태평양과 연결시킨다.

한때 이곳에서 진주조개들이 자랐기 때문에 하와이 사람들은 진주만을 와이모미('진주 바다'라는 뜻)라고 불렀다.

1840년에 미국 해군 대위 찰스 윌크스가 처음 측지측량을 했고,

이 만까지 산호 사주 수로의 준설작업을 연장할 것을 주장했다.

약 30년 후 존 매캘리스터 스코필드 대령은 미국이 이 항만에 대한 권리를 획득할 것을 제의했다.

그 뒤 1887년에 체결된 조약으로 미국은 이곳을 급탄항과 수리항으로 독점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지만

실제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때

태평양 기지로서 이 항만이 갖는 전략적 가치가 입증되면서부터였다.

1908년 해군기지가 세워졌고, 1919년에 건선거가 완공되었다.

1941년 진주만 공격시 미국 군함 애리조나호가 침몰되어 1,102명의 선원이 목숨을 잃었다.

이때 가라앉은 배의 선체에 지금은 흰색의 콘크리트-강철 구조물이 걸쳐져 있는데,

이것은 1962년 5월 30일 국립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진주만에 있는 시설물로는 해군 조선소·보급소·기지 등이 있다.

와이피오 반도와 사우스이스트로크 지역에 있는 해군조선소에는 건선거, 2개의 해상철도,

보조(함정) 부양식 독(dock), 공장 등이 있다.

해군보급소는 펄시티 반도에 있다.

진주만 수로는 동쪽으로 히컴 공군기지, 서쪽으로 해군관측소,

에바비치 가까이에 있는 바버포인트 해군항공기지의 숙소 등과 접해 있다.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 때 이 항만 구조물들은 양국 전쟁지로 출정하는 부대와 장비의 집결장소였다.

 

출처 : 다음백과 100.daum.net/book/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