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0일 총무(김난옥 교장)님의 승진 발령을 축하하는 모임이 있었다.
청송고 교장실에서 보이차 대접을 받고 학교를 둘러 본 다음
달기약수터에서 닭불고기에 닭백숙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송소고택 마을 경희재
송소고택 가는 길에 들려 본 창실고택
송소고택에 다 다르다.
송소고택이 주인은 성씨는 청송靑松 심沈씨이다. 청송 심씨는 조선시대 최고 명문 중 하나이다. 청송 심씨 가문에서 세 분의 왕후가 나왔는데 세종의 비인 소헌昭憲왕후, 명종의 비인 인순仁順왕후, 경종의 비인 단의端懿왕후이다. 그리고 제상이 13명이 나왔고 과거 급제자가 194명이 나왔다고 한다.(한국의 전통가옥 34)
청송 심씨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지낸 심홍부沈洪孚를 시조始祖로 모시고 있다. 그의 증손인 덕부德符가 우왕禑王 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러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졌다가 청성군충의백靑城郡忠義伯에 진봉되면서 청송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덕부는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창업에 공을 세우고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으며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와 영삼사사領三司事를 거쳐 정종 1년에 좌정승左政丞에 이르렀다. 그의 아우 원부元符는 고려 말에 여러 관직을 거쳐 전리판서典理判書에 이르렀으나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새 왕조王朝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節義를 지켰으며, 후손들도 그의 유훈을 받들어 <선훈불사先訓不仕>라 하여 대대로 벼슬을 멀리 하였다.
청송 심씨 시조묘는 청송 보광산에 있다. 보광산은 지금 송소고택에서 남동쪽으로 보이는 산이다. 이 묘는 세종 비인 소헌왕후와 명종 비인 인순仁順왕후의 지시로 보광산에 산에 잣나무를 심게 하고 청송부로 하여금 수호하게 하여 잘 보존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청송심씨 대종회 사이트)
청송 심씨는 9대간 만석부萬石富를 이룬 집안이다. 이렇게 9대를 내린 만석의 부를 처음에 이룬 사람은 영조대 사람인 15대 심처대沈處大부터 라고 한다. 처대는 심세장沈世章의 5형제 중 4째 아들이다. 그 이후로 계속 만석꾼으로 근대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송고고택은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대손 송소松韶 심호택이 1880년 파천면 지경리(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리로 이거하면서 건축한 가옥으로 이곳으로 옮기면서 ‘송소세장松韶世莊’이란 현판을 달았다.(문화재청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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